제목 : [수암칼럼] 동을(東乙)의 흑묘백묘 등록일 : 2005-10-10    조회: 681
작성자 : 김병태 첨부파일:
오사카 니시나리 구(區) 덴카차야 역 부근 동네.

철로를 가운데 두고 불과 몇 백 미터만 지나면 서울의 강남과 같은 신도시의 번화가가 나온다.그러나 반대쪽 코앞에 있는 덴카차야 인근에는 동네를 관통하는 전철로변에 그 흔해 빠진 방음벽조차 없다.

예산이 없어서가 아니다. 연간 820조(兆) 원의 세출 예산을 펑펑 쓰는 일본이 국내서 두 번째로 큰 대도시 한복판에 방음벽 없는 전철로를 예산 문제로 방치할 리가 없다.

이유는 따로 있다.

지역 국회의원으로서는 아예 신경 끄고 지내도 되는 찬밥 동네인 셈이다. 애써 예산을 끌어댈 생각도 없거니와 그럴 틈 있으면 철로 반대쪽 강남 동네 표밭에 한 푼이라도 더 퍼주려고 든다.

지역 개발 투자의 우선 순위가 사업의 타당성 기준보다는 표밭 논리에 의해 결정되는 탓이다. 정치란 그런 것이다.대구 동구을 재선거를 한 달 앞두고 덴카차야처럼 북서풍만 불던 ‘찬밥 도시’ 대구에 갑자기 동남풍이 불어오고 있다.

재선과는 상관없는 칠곡, 지산, 범물 주민들까지 동구 쪽 구민들 덕분에 3호선 지하철을 ‘횡재’(?)하는 잔치판이 벌어졌다. 표 때문이다.이번 재선거 판에서 대구 시민 그리고 동구을 유권자의 정서는 크게 두 쪽으로 나눠볼 수 있다.

한쪽은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잡으면 좋은 고양이지 털색이 중요한 건 아니니까 열린우리당이든 한나라당이든 내 동네 잘 개발해주는 후보가 좋은 후보라는 ‘흑묘백묘’(黑描白描) 논리 쪽.

다른 한쪽은 ‘지하철 연계 증설’은 적자 해소 경영 논리로 봐서도 조기 착공이 필수적인 우선순위 사업인 만큼 선거와 관계없이 진작 지원했어야 했던 지역 현안 사업이다. 그런 사업을 뒤늦게 선심 선거 미끼로 이용하려 든다면 그런 당과 그런 후보는 도덕성 없는 전략꾼이다.

언제부터 대구가 그런 전략꾼이 던져주는 사탕 한 알에 표를 팔고 살았더냐. 그것도 우리가 낸 세금이 섞인 예산인데 라는 쪽이다.

대구시민들은 이번 동구을 재선에서 그런 두갈래 갈등을 놓고 어느 쪽이든 분명한 결단을 내려야 할 처지고 그런 선택의 계기 앞에 서있다. 지난 총선 때도 많은 시민들은 ‘이제 대구에도 여당 국회의원 한둘은 뽑아보자’는 말들을 해왔다.

최근 들어 폭탄주로 콧잔등이 빨개져 작취미성(昨醉未醒)이 된 듯한 일부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의 추태를 보면서 그런 분위기는 더 폭넓게 확산되고 있다.

그래서 여당 측의 지하철 예산 확보 홍보를 사전 선거라 주장하는 한나라당의 시비를 ‘배앓는 소리’ 정도로 흘려 듣는 분위기까지 나온다.

어쨌건 동구을 유권자들이 흑묘백묘의 논리를 따를 것인지 ‘못 먹어도 고!’ 할 것인지는 그분들의 맘이다. 꿩 잡는 게 매라듯 이강철 시민사회수석을 동구 개발의 힘을 가진 송골매로 볼지 공약 놓고 헛울음 소리만 내는 까마귀로 볼지도 그분들의 판단이다.

다만 유의해 볼 것은 그를 또 낙마시킬 경우 지하철 3호선 약속도 내년 설계 예산만 통과시켜 주고 그다음 본 공사 예산은 함흥차사가 된 채 ‘너네끼리 어디 한번 계속 배겨 봐라’ 할 수도 있는 게 정치라는 점이다.

그런 걸 겁내서가 아니라 이제 대구도 ‘한나라 간판만 걸면 부지깽이를 내세워도 당선되더라’는 실패한 등식(等式)만은 깨야 한다.

한나라 후보를 찍더라도 당 간판이 아닌 다른 기준으로 찍자는 뜻이다. 앞으로의 시대는 ‘감성 선거’에서 ‘이성 선거’로의 대전환이 요구되는 시대다.

金廷吉 명예주필 / 每日新聞 : 2005년 09월 26일(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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